죽음을 그린

죽음을 그리다 (예술에 담긴 죽음의 여러 모습, 모순들)
: 이연식 / 시공사
책 속)
후회 없이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불러오듯,
후회 없이 살아온 일생은 행복한 죽음을 불러온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죽는 이는 언제나 다른 이다."
- 마르셀 뒤샹
<CSI 라스베가스>의 주인공(길 그리섬 반장)의 대사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죽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면 암이 좋겠다'라고 했다. 죽을 날을 받아 놓았지만 당장 죽지는 않으니
주변을 정리할 수 있다는 이유다.
나 또한 주인공의 말에 동의한다.
치매나 뇌졸중 같은 병과는 다르게 시한부라는 점,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인생이 어디 그렇게 마음대로 될까 싶지만.
하지만 선택의 여부가 있다는 점에서 자살과는 다른
엄연한 이유가 있으니 이왕이면 그쪽이었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보니 이 책에서 나타난 죽은 이의 모습은 오히려 담담하다.
아마도 경험 전의 일이라면 호기심에서 주의 깊게 보고 생각해 봤을 테지만.
죽은 이를 그린 그림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
엄마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돌아가신 직후 나는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모습을 담았다.
다소 불경스러운 행동이라고 여겨졌지만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죽음은 잠든 모습과 흡사하다고 했던가.
그렇게 평온하게 깊은 잠이 드신 것 같은 모습에 나는
죽음이라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깨어서 뭐라도 먹을 것을 달라고 하시거나
내게 말을 건넬 것 같았으니.
바라보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엄마의 모습을 담으려는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진정으로 삶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총체적으로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는 죽음이 가장 강력한 것이라 여긴다.
스스로 겪는 몸의 고통 혹은 마음에 크게 상처가 되는 어떤 사건이 그에 버금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분명 죽음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다.
멀게만 느껴지고 내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나니 죽음은 더 이상 두렵지도 피하고 싶지도 않은
가까운 친구가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