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e

진정한 간호의 시작, 마음

me+ 2022. 1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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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언어   : 크리스티 왓슨   / 니케북스

  - 삶과 죽음, 예측불허의 몸과 마음을 함께 하다

 

 

 

(책 속)

 

사실, 신규 간호사 시절엔 화학, 생물학, 물리학, 약학, 해부학만이 

간호학의 영역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철학, 심리학, 예술, 윤리와 정치가

간호학의 실체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의 여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환자, 친지, 직원 등 우리가 이미 경험한 사람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순간 돌봄을 받고 돌봄을 준 경험이 있는 사람들,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친절은 들리지 않는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다. 
- 마크 트웨인


간호학 전문가 힐데가르드 페플라우는 1960년대에 최초로 대인관계 이론을 주창하며

'치유의 예술'로서 간호를 정립했다.  간호사와 환자가 함께 노력해가는 과정에서 양자가 모두

성숙하고 지식을 확장해간다는 것이다. 

 

 

간호사이자 학자이며,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간호사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핸더슨의 <욕구이론>을 읽고 간호에 대한 그녀의 유명한 정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간호사가 가진 고유한 기능은 개인의 건강, 건강 회복, 또는 평안한 죽음에 기여함으로써
그 사람이(건강하든 병자든 상관없이) 체력이나 의지, 지식이 있다면
남의 도움 없이 수행했을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사람을 간호한다는 건 그가 건강했다면 직접 행했을 일을 그를 위해 해 준다는 의미다. 

그들에게 의지와 여력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또 다른 간호학자인 도로시아 오렘이 1959년에서 2001년 사이에 발전시킨

거창한 간호 이론을 읽게 되었는데, 오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립적이어야만 하고 스스로를 돌볼 의무가 있다" 

내 머릿속은 간호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상반되는 주장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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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기억하자. 기억하자.'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간호는 슬픔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지만 아이들 간호는 가끔 '바보같이 되기'가 필요하다.

수프가 가득한 욕조에 기꺼이 들어가서 아이를 웃게 만드는 것과 같은...... 

아이의 뇌 스캔 한가운데 희뿌연 큰 구름이 끼어 있을 때, 아이의 엄마는 잡고 버틸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간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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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후 세계에 들어가기 전 심장을 진실의 깃털과 함께 

천칭에 달아 무게를 잰다고 믿었다. 심장이 깃털과 평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의 영혼은 악마에게 

잡아먹혀 영원히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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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분명히 심장의 언어를 사용한다. 

환자를 '마음이 상한' 사람들로 이해하고 묘사한다. 많은 간호사들이 이를 목격해 왔다. 

가장 훌륭한 간호는 머리가 아닌 마음(심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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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씻기고, 입히며, 먹이고, 배변을 돕고, 더 편하게 해주는 일이 포함된다고 병원은 규정한다. 

이러한 일들이 환자들의 치료와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서 대부분의 병동에서

요구되는 간호의 핵심이다. 

 

친절, 공감, 연민, 그리고 환자의 품위를 지켜주려는 마음이 좋은 간호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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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환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이고, 병마에 맞서서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간호사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간호사 및 조산사의 직업행동강령 제일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간호사는 친절, 존중, 공감으로 환자를 대해야 한다."

 

 

삶이란 지속하는 것뿐 아니라 그 자체를 능가하고자 하는 과정이다. 
그저 유지하려고만 한다면,  산다는 건 죽지 않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 시몬 드 보우아르



 

훌륭한 동료들과 든든한 직업 안정성 이외에 이 일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음을 매일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을 간직한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는 정말 착하다고 아직 믿기 때문이다. 
- 안네 프랑크


그녀가 아버지에게 약을 드리고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15분을 기다리다가 

진통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커튼을 걷었다. 통증이 최고점에 이르기 전에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릴은 충분히 이해하고, 환자가 햇빛을 견딜 수 있기 전에는

커튼을 열면 안 되는 것도 알았다. 

 

 

나는 간호란 간호사로서 일반 업무뿐만 아니라 환자와 그 가족에게 세세한 부분까지 

편안함을 제공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란 걸 배워왔다. 

가장 취약한 동시에 의미 있는 타인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한다는 건, 그리고 가족이 아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건 특권이다.

 

 

시가 그렇듯이, 간호에서는 은유적 의미와 직설적 의미가 서로 경계를 넘나든다. 

가슴의 구멍은 가슴의 구멍이다. 간호사는 그 중간에, 말 그대로 구멍을 고치는 의사의 기술과

환자의 근심과 상실이라는 은유적 구멍 사이에 있다. 

 

 

간호는 돌봄과 연민, 공감을 표현하는 차별 없는 행위이고, 그래야만 한다. 

또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상기해야 한다. 사회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를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척도라면, 간호라는 행위 자체는 인류애의 척도다. 

 

 

 

사회의 진정한 척도는 가장 연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 마하트마 간디

마침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가장 힘든 방식으로 간호가 무엇인지 배웠다. (...)

친절의 중요성을 진실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에 서 봐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에야 병원의 환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얼마나 소중하고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낯선 이의 친절에 기대야만 할 때가 분명 온다. 

 

간호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창한 이론도 필요 없다.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간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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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은 간호의 가장 진정한 모습이다. 나이 든 분들을 보살필 때는 기술이나 의학적 지식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치료 자체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존엄, 존중, 다정함, 지원과 보살핌 등 간호의 마음과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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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 갈망'은 타인과의 신체적 접촉이 결여될 때 노인들이 갖는 욕구불만 같은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포옹과 같은 긍정적 신체접촉은 성인이 혈압과 맥박 감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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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은 "환자가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있거나 정신이 희미하거나 체하거나 욕창이 생긴다면,

이는 병의 문제가 아니라 간호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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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자신을 그만큼 바치는 건 위험하다. 자신이 손상되지 않고 삼킬 수 있는 슬픔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 하지만 좋은 간호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해하면서까지 타인을 돕는다. (...)

간호사 및 조산사의 직업행동강령 20조 6항은 다음과 같다. 

 

"자신이 현재와 과거에 돌본 사람들과 그 가족들과는 항상 직업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객관성을 지킨다."

 

그러나 좋은 간호에는 객관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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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받는 '마지막 돌봄'은 간호사의 몫이다.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사적인 일이다. 

우리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처럼, 이 일은 보통 드러나지 않는 과정이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몸만 살피는 것이 아닌 마음이 담길 때 진정한 간호가 된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것이 아무리 직업적인 일이어도 말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보호자로 오랜 시간 간호하는 일을

했고, 일하는 간호사들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는데 돌봄은 기본적으로 헌신을 필요로 

하는 행위다.

 

 

밤낮 없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그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비스 업종이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들 곁에서 일한다는 것,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불만들을

들어주며 의료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몹시 고되고 소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절하고 상냥한 말투와 행동으로 환자나 보호자를 대하는 그들을 보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이 투철한 사명감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여긴다. 

 

 

친절, 이해, 공감, 연민, 존중, 다정함, 보살핌 등이 돌봄의 언어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모두 따뜻하고 애정 어린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렇기에 간호는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간호를 받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되어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돌봄의 행위에 대해 경이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하는 일이고, 병원비라는 돈을 지불하고 받게 되는 서비스에 속할지라도 말이다. 

육신이 몹시 연약해져 마음마저 낮아질 때, 타인의 따뜻한 온기가 담긴 말과 행동(케어)을 경험하게 되면

상대가 무척 친밀한 대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의사보다 더 가깝고, 마음까지 살펴주는 존재가 간호사가 아닌가 한다. 

머리보다 손과 발을 많이 쓰는 직업군이 폄하되거나 인정을 덜 받는다 해도 

간호는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들을 감당하는 행위다. 

 

 

누구나 언제라도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살펴주고 챙겨주는 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때때로 그런 돌봄이 당연시 되고,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돌봄을 직접 해보고, 혹은 직접 케어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돌보는 행위의 숭고함과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며, 어느 입장이 되건 인간적인 성숙을 갖게 되는

소중한 경험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