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기회를 지혜롭게 지나는 법
아픈 몸을 살다 : 아서 프랭크 / 봄날의책
(At the Will of the body : Reflections on illness)
질병서사 연구에 관심이 많은 의료사회학 교수가 자신의 질병 경험을 사유한 이야기.
위험한 기회, 질병
질병이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질병에 관해 생각해야 하고 이야기해야 하며 어떤 사람들, 곧 나 같은 사람들은 질병을 주제로 써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씀으로써 우리는 개인들이자 한 사회로서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다. 또 그때야 질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한밤의 통증 사이로 엿본 아름다움
통증에 대처하는 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통증이 저절로 나아지기 전의 어느 날 밤, 조각나는 듯한 느낌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발견했다. (..)창밖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나무 바로 위쪽의 가로등이 나무 그림자를 서리 낀 창문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곳에, 암흑과 고통밖에 없는 듯했던 한밤중의 창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돌봄은 아픈 사람의 고유함을 아는 것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는 일의 가치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독특한지 보여주는 데 있다.
암 환자에게 문제는 깨어나는 일이 아니라 깨어난 다음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두려웠던 것은 죽음이라기보다는 서서히 죽어가는 것, 부패해 가는 것, 끝없이 고통받는 것, 몸에서 악취 나는 체액이 뿜어 나오는 것이었다.
잘 돌보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식해야 하고, 사람마다 같은 질병을 다르게 경험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얼마나 고유한지 이해하는 특권.
돌봄 제공자가 이 고유함에 마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할 때 아픈 사람의 삶은 의미 있어진다. 나아가 아픈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돌보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면서 돌보는 사람의 삶도 의미 있어진다.
고통이나 상실 같은 용어는 이 말이 아픈 사람 자신의 경험으로 채워질 때까지는 실체가 없다.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고유함을 목격하고 차이를 전부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돌봄이다.
질병에 가치를 부여하기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글을 읽기에 앞서 책 표지 그림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남자가 자신보다 조금 큰 상대와 씨름하고 있는 모습.
그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제일 왼쪽 위에 의료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아래에
가족 혹은 지인들, 주변인들이 씨름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표정이나 모습이 밝지 않고 걱정과 우려, 슬픔 같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씨름하는 남자의 모습은 바로 질병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에 대한 은유로 보입니다.
너무 와닿는 비유가 아닌가 합니다.
의료사회학을 전공한 교수가 자신의 질병에 대해 사유한 이야기가
다양한 생각과 관점으로 질병을 보게 합니다.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차원으로까지 생각하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돌봄을 제공하는 자와 아픈 사람의 차이, 진정한 돌봄에 대한 정의까지.
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돌봄에 대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을 하는 사람과 아픈 사람의 속 깊은 이야기들, 고민과 어려움 또한
수면 위로 드러내어 서로의 사정과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나 교류도 필요합니다.
돌봄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돌봄은 내 곁의 사람들, 이웃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것이기에 관심을 가지는 기회도 필요합니다.
아프다는 것,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지만 그만큼 우리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범위를 넓혀
고민하고 성장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없고 혼자서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양한 계층의 질병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들이 풍부해질수록
개인의 비극과 어려움에 머물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