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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

me+ 2023. 2. 17. 09:00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 어크로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내가 계속 무엇이든 글을 쓰는 삶을 살게 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미줄처럼 쳐진 관계의 그물에 주목하고 싶다. 

그 관계의 그물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주시하고자 한다. 

 

남의 잘못은 중요하고 나의 허물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나를,

다른 이의 막말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웃자고 하는 소리로 남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나를,

무시로 반칙하며 살면서도 세상엔 원칙의 청진기를 대는 나를.

 

(...)

 

'나도 별수 없다'는 깨달음. 

인간을 추락시키는 절망도, 인간을 구원하는 희망도 그 부근에 있다. 

바라건대, 스스로를 믿지 않기를.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믿는 순간 편견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고, 

믿는 순간 맞은 편 차량과 추돌한다. 

 

 

 

미끼를 물었기 때문에 불행이 시작됐다는 건 이 사회의 오래된 우화다.

성폭행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현실이 우화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밤늦게 다니지 마라", "짧은 치마 입고 다니지 마라.", " 인적이 드문 곳에 가지 마라."

이런 말들은 모두 미끼를 문 자의 책임이라는 전제 위에 있다. 

'미끼를 물어버린 자의 책임' 논리는 이 땅의 모든 사건,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느냐?" "왜 세월호에 올랐느냐?"

"그 위험한 장소에 왜 갔느냐?"

 

 

이 물음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음모다. 

(...) 피해자는 죄가 없다. 

 

 

한없이 약한 인간도 악마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가족, 친구,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악에 무릎 끓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한계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삶에서 느끼는 회의감, 답답함을 토로할 길 없이

그냥 버티거나 지나가길 기다리는 심정에서였다. 

저널리스트는 아니어도 일상에서 부조리하고 편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세상과 사회가 가진 민낯에 비판적이고 냉철한 마음이 된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하며 체념하듯 자신도 그 선을 스윽 넘어버리든가

'그래도 지켜야 할 가치와 정의는 있다'라고 생각하며 선비정신으로 살든 가는 

각자의 몫이다. 

 

 

책이 중반부를 향해 갈 즈음, 책을 덮어버렸다. 

썩고, 구리고, 아리고, 환장할 일들이 계속 보이는 현실이 보기 싫어졌다. 

그럼에도 그런 현실 속에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저자의 고뇌에 공감하며

누군가는 노래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누군가는 저자처럼 글로써

세상과 사회를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안 변할 세상, 외쳐봐야 나아질 게 없는 세상이라고 

체념하기보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드러냄으로써

'연대하는 힘'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책을 볼 사람은

그 가치나 개념을 아는 사람의 눈에 더 잘 들어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정작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할 사람들은 보지 않을 것이다. 

볼 이유나 당위 따위를 느끼지 않을테니까.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이 책을 관심 있게 볼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자신의 의롭다함에 고개가 바로 세워질지라도 

그 뻣뻣함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판하며 평가할지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바름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한

구원의 문은 가능성처럼 열려있다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