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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욕에 대하여 본문

아무튼, 잠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은 없다) : 정희재 / 제철소
(책 속)
우울해서 바닥을 치는 날이라도 일단 자고 나면 나아졌다.
작가 하퍼 리가 <앵무새 죽이기>에 쓴 문장은 언제 봐도 진리다.
"아침에는 항상 상황이 나아진다. (Things are always better in the morning)"
/
수면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와 내면의 도덕률에 치이는 한, 사지 멀쩡한 젊은 애가
'때 아닌 때 자는 잠'은 숨기고픈 약점이었다. 어쩌면 숨은 아픔 같은 것이 잠으로
도피를 촉진했는지도 모른다.
/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잠과 권태와 우울을 이겨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교만해서도 안 된다.
/
권태와 우울의 도피처로 잠을 선택했다.
/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오래전 실수의 결과들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건 잠인데, 여러 결핍이 삶을 지배해왔다고 뇌가 오작동하기 시작한다.
잠에 대해서 글을 쓰라면 나도 꽤나 할 말이 많다.
그러려면 나의 아픈 시간들도 드러나야 하기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지만,
잠에 대한 절절한 근원은 그 시절 때부터 씨앗이 되어 온 터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안개 낀 상태와
엄마의 마음앓이 탓에 집안이 정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분위기에서 나는 잠으로 도피했다.
모든 에너지가 뿜뿜 할 시기에 나는 그러지 못했고, 인간이 가진 여러 욕구 중 수면욕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욕심부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일생일대의 큰 실수였고, 오래도록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싶다.
처음엔 술을 먹는 것 마냥 잠이 들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에
그렇게 잠을 숭배하고 잠이 나를 지배하도록 놔두던 때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깨지 않고,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거르고 잠자는 것을 무슨 큰 자랑인양
뿌듯하고 신기해 하면서 계속 잠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그때는 잠이 나를 옭아매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한 터라 그렇게 철부지 생활은 계속 되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신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도 모른 채 나를 잠에 묶어두었던 때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 좀 잠을 통제하고 시간이라는 것을 좀 유용하게 쓰며
커리어도 쌓고, 내면의 교양도 쌓으려는 계획과 이상이 높았지만 그때부터는 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 시작한다.
진료 시간을 못 지켜 예약을 미루고, 해야 하는 일정도 소화를 못해서 연기하거나 어떤 일을 놓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되면서 내 인생에 빨간 경고등이 깜빡거리게 된다.
잠깐 취하려고 했던 잠이 중독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후유증을 단단히 앓게 된 것이다.
잠에서 벗어나서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지내려고 해도 이젠 잠이 나를 옭아 맨 상태여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창 무언가를 이루고, 쌓고, 충전하고, 나아가는 삶에서 뒤쳐진다는 자괴감으로 힘든 시간들...
경쟁 사회 속에서 잠 잘거 다 자고,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면 실패나 도태가 되는 시대 아닌가.
잠은 분명 우리 신체에 중요한 기능과 필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천덕꾸러기 마냥 등한시되는 것이
당연한 시대를 산다.
식욕이나 성욕에 빠지지 않은 것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뭐든지 적절한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잠은 많다.
여전히 새벽형 인간이기를 소망하고 그 시간에 깨어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 한다.
비록 몸은 올빼미형에 길들여져 있고, 오후가 되어야 비로소 에너지가 올라가는 유형이지만
이른 아침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아예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다. 요즘은 일찍 기상하고 있다)
나이 들면 잠이 빨리 깬다고 하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그다지 좋은 건 아니란다.
잠들고 싶고 더 자야 할 시간인데 깨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잠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욕심껏 내 욕망을 위해 잠을 통제하는 것은 건강상으로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닌 시점이긴 하다.
나의 적정 수면 시간은 7~8시간이다. 잠을 좀 덜 자고 책을 읽고 할 일들을 하고 싶은데 이젠 그 정도
수면을 취해야 컨디션이 유지된다.
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있긴 할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사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이 오래 전 있었다니, 그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나의 경우 알러지로 심한 고생을 했던 터라 잠 못자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안다.
식음을 전폐해도 죽지만 잠을 못 자는 것도 그에 버금가게 위험한 일이다.
아기들은 꽤 많이 잔다.
노인이 되면 다시 그때로 회귀하듯 잠이 많아진다.
아기들은 성장을 위해 잠을 오래 자지만, 노인의 경우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잠이 필요하다.
잠을 너무 홀대해서도, 너무 깊이 빠져도 결코 이롭지 않다.
학자들이 말하는 적정 수면을 지키려고 하기보다
개인의 상태와 환경에 따르는 것이 더 건강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잠, 잘 자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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