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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vibes only ! 본문

Book +

Good vibes only !

me+ 2023. 1. 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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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  변지영  / 트로이목마

 

 

(책 속)

 

 

우연은 어떤 의미로 '나'의 반대말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도, 내 판단, 내 계획, 내 능력, 정체성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지요. 어떻게 보면 농담 같은데 잘 들여다보면 그만한 진실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의 말대로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도 없으니까"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당신의 손바닥에 깃든 무한함에,
한 시간 안에 들어 있는 영원함에 머물러라.

- 윌리엄 블레이크



첫 날

 

 

 

첫날은 언제나 우연이다

 

어설프고 눈부시며

기대가 없어서 불협화음이 없다

 

첫날 피어난 것들은

이내 서서히 시들어

우리는 바빠지기 시작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첫날은 다시 오지 않아

 

의도하지 않은 아름다움은 빚을 수 없고

기대하지 않은 기쁨은 만들어낼 수 없고

생각지도 못한 감동은 불러일으킬 수 없고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첫날은 그리하여

언제나 마지막 날이다 

 

 

/

 

염려와 전념

 

 

앞일에 마음 두는 것은 염려

한 가지에만 마음 두는 것은 전념

염려는 언제나 뒷문으로 들어오기에

딱히 막을 도리는 없다

 

다만 당신의 집을 전념으로 꽉 채워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거다

현관은 현관의 전념으로

거실은 거실의 전념으로

부엌은 부엌의 전념으로

 

빼꼼히 문 열고 엉덩이부터 들여놓은 염려가

쳇! 재미없다고 가버리도록

 

/

 

 

 

 

말은 발화되는 그 순간에 들리는 것이 아니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통과하는 지점이 비슷할 때

양쪽을 함께 울리며 전달되는 것이어서

말이 도착하는 데에는 십 년, 이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당신의 말을 상대방이 듣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말은 가까이 어딘가에 남아

그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

 

 

기억

 

 

오랫동안 당신에게 나는

없던 일이었는데

없던 일이었는데

 

여러 해 동안 죽어 있었던

화분에는 어쩐 일로

다시 꽃 피는가

 

뿌리가 살아 있었던 걸까

씨앗이 숨어 있었던 걸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다만 가라앉는 것

 

/

 

 

물결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시간과 시간이 교차하는 일

 

이쪽의 시간이 저쪽으로

저쪽의 시간이 이쪽으로

 

흘러들어 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물결

 

/

 

 

사랑 2

 

 

변치 않는 사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변함을 받아들이는 일이 사랑이다

 

시간이 바꾸어놓는 정경들을

그대로 담아내는 일이다

 

가을의 단풍이 오지 못하도록

여름의 초록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단풍과 초록을 모두 껴안아 겨울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해

같이 생겨나고 같이 사라짐을 아는 일이다

 

 

/

 

 

시선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구멍이고

인간이란 구멍과 구멍 사이의 통로여서

 

누구에게나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간절히 바랐던 건

그저 시선 하나, 작은 시선 하나였답니다

그러니

 

시선을 주세요

본래 아무것도 아닌 우리는

시선으로 구멍을 메우며 살아간답니다

 

/

 

 

우리 삶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훈련시키고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링 같습니다. 당신의 링 위에는 스파링 파트너가 끊임없이 주어지지요.

(...) 너무 싫어하거나 너무 좋아하며 혐오와 집착을 널뛰면서 우리는 

사랑할 기회들을 놓치죠.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방종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고 한계 안에서

최선의 친절을 다하겠다는 서약이지요.

 

 

 

 

말은 할수록 외로워지고
관계는 기대할수록 멀어지고

/

때로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침묵

 

 

침묵하기까지 나는 너무나 오래 걸렸다

지금이나마 침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침묵은 말을 참는 것이 아니다

 

말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일

가장 적극적으로 마음을 지키는 일

 

습관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결단,

무엇이 오더라도 고요히 머무는

치열한 행위,

침묵이다

 

 

/

 

 

몰라서 만나고 몰라서 헤어지지

 

 

너에게 가는 길은

언제나 위태롭고

나에게 오는 길은

대개 불안하지

 

우린 언제나

몰라서 만나고

몰라서 헤어지지

 

이제는

전망 없음을 전망해야지

그래야 우리가 우리일 수 있지

 

 

/

 

결함을 살아간다

너는 그 부분을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싶어 하지. 
없애고 싶어 해. 
하지만 모두 다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어.
자신의 그림자를 지우는 법은 없으니까.

 

 

무한이 무한에게

 

 

우울은 어떤 것만 보기 때문에 일어나지만

슬픔은 모든 것을 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울은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슬픔은 연결되게 합니다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너무 바쁘게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봄을 볼 수 있고 여름을 들을 수 있다면

아직 늦은 것은 아니겠지요

 

 

/

 

 

노릴스크의 해

 

 

열두 달 중 아홉 달이 겨울인

노릴스크에서는

 

해가 뜨지 않는 두 달 동안

사람들이 낮을 만들어내지

 

창가에 등불을 환히 밝혀

해가 와 있는 척하지

 

너 없이 오래 살아온 나는

매일같이 네 자리를 만들어내지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며

네가 여기 있는 척하지

 

/

 

 

우연과 필연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처럼 사랑이

당신에게 들어 있었듯,

 

어느 날 대상을 만났을 뿐

간절함은 이전부터 있었다

대상이 우연이라면

간절함은 필연이다

 

대상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새로운 해에 좋은 소식 같은 책 한 권을 만난다.

그렇다.

좋은 것은 우연히 다가오는 일인 것 같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향해, 무엇을 만들어나가는 이에게

어느 날 선물처럼 나타나는 일

그래서 그 좋은 일은 몹시 귀한 것이 된다. 

 

때로는 금방 휘발되는 것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황홀해질 수 있지 않은가.

또한 결코 한 번 들어온 것은

쉬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은 귀한 것이기도 하기에.